靑·새누리 격분케한 홍익표가 인용한 책 내용은...

홍익표 “책 보면 오해없을 것,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 유사점을 얘기한 것” 정웅재 기자|최종업데이트 2013-07-12 12:47:37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에 단단히 화가 났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12일 오전 춘추관 기자브리핑에서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은 폭언이고 망언"이라며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홍보수석은 홍 원내대변인에게 대통령과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더 격앙된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10시로 잡혀있던 '남북정상회담 자료 열람위원 회의' 일정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더 이상 국회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정쟁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홍 의원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홍 의원의 사퇴와 대선 불복성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있는 조치가 없다면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관련한 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도 있다"면서 상임위 보이콧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야당 원내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에 대해 이렇까지 반응을 보인 적은 없다.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발끈했을까?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이정현 홍보수석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엄청난 발언이라도 한 것일까?

홍익표 원내대변인 무슨 말 했나

11일 오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당 고위정책회의 비공개 내용을 브리핑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요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국정원은 양지를 지향하고 비공개활동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음지를 지향하고 국정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것 같다. 자칫 남재준 대통령, 박근혜 국정원장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최근의 국정원장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익을 팽개치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왜곡하고, 국가비밀을 스스로 공개하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국정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홍 원내대변인은 역사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작년에 나온 책 중에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

최근의 이 두 분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첫째,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이 두 분이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하는 것 같다. 이제 노골적으로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책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언급한 '귀태' 의미는

홍 원내대변인이 언급한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재일동포 역사학자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와 현무암 훗카이도대 교수가 지난해 출판한 책이다. 홍 원내대변인의 논평은 으례 여야가 상대를 공격하면서 내놓는 수준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렇게까지 발끈하는 건 바로 '귀태'라는 표현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으로 비유한 것에 소위 열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귀태'라는 표현을 문제 삼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에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어는 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을 겨냥한 '귀태'라는 표현이 못마땅할 수는 있겠지만, 이 책의 지은이가 언급한 '귀태'는 만주국에서 성장한 일본 전범 정치인 기시노부스케와 한국 독재가 박정희를 연결고리로 만주국과 전후 한일 역사와 체제에 대한 평가를 하며 지은이가 끌어다 쓴 표현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책에서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두 인물을 통해 만주국과 전후의 일본 그리고 해방 후 한국의 연속성에 주목했다"고 썼다.

잠시 강상중 교수와 함께 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세운 괴뢰정부로 193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15년간 존재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주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산업행정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후 도조 히데키 내각(1941~1944)에서 상공대신을 지내는 등 전쟁 수행에 적극 협조했다. 결국, 패전 후에는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간 복역하고 1948년 풀려났다.

기시노부스케는 전전의 군국주의체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전후에도 전전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았지만 전전의 경력을 발판삼아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한다. 1953년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54년 자유당에서 제명되자 일본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자유민주당(자민당)을 결성하면서 당의 간사장이 되었고, 1957년에는 총리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러나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 과정에서 국민의 비난을 받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기시는 도쿄 전범 재판에 임할 때의 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전쟁에 진 것에 대해 일본 국민과 천황폐하께 대한 책임은 있어도 미국에 대한 책임은 없다. 그러나 승자는 패자를 벌하는 바이며, 어떠한 법을 갖고 벌하든지 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개중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침략전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우리로서는 궁지에 몰려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후세에 남겨 둘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그 재판에 임할 생각이었다." 기시에게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자주국방을 선호하는 안보관, 평화 헌법 개정 찬성, 전전의 일본 역사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데, 이런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원형에 해당하는 인물이 기시노부스케다. 기시의 역사 인식은 현재 일본 우익 정치인의 대표 주자가 된 외손자 아베 총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1937년 3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북 문경면의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박정희는 충성혈서를 쓰고 1940년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일본 육군사관학교까지 졸업한 박정희는 1944년 만주국군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시기는 달랐지만 만주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관계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진전시키는데 최대의 추진력이 됐다.

"기시 노부스케는 수상 퇴임 후 한일협력위원회 회장을 맡아 박정희 정권에 대한 후견인 같은 역할을 했다. 또 박정희에게 유신체제라는 독재체제가 잉태할 위기에서 탈출하도록 측면적인 원조의 손길을 내민 것도 기시 노부스케였다."('기시노부스케와 박정희' 본문중)

기시 노부스케가 박정희를 위기에서 탈출하도록 측면 지원한 대표적 사건이 1973년 8월, 중앙정보부가 김대중을 도쿄에서 납치한 이른바 '김대중 사건'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엄중하게 항의하고 김대중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면서 한일 양국에 긴장감이 흐르게 됐다. 특히, 당시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막 제시한 시점이어서 일본의 경제원조가 중요한 상황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일본의 경제원조액 결정도 유보되는 바람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이때 한일 간의 정치적 타결을 꾀하기 위해 '특사'로 파견된 이가 기시 노부스케였다. 양국은 기시의 노력으로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11월 방일해 다나카 수상에게 사과 의견을 표명하면서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했다.

기시와 박정희의 끈끈한 관계는 계속 유지됐고, 박정희는 1970년 6월 부산-시모노세키 페리 취항 기념행사에 참가한 기시에게 일등 수교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수십년이 지나 동시대에 기시의 외손자 아베 총리와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양국에서 대를 이어 집권했다는 사실은 눈길을 끌만하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역사 부정과 박 대통령의 불통에서 기시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홍익표 "책 구절 인용, 대통령 인신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이다"
"책 내용을 보면 오해가 없을 것, 귀태는 체제의 유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강상중·현무암 교수는 두 사람이 경험한 만주국의 유산이 기시와 박정희를 통해 양국의 경제 사회에 어떻게 뿌리 내리고 있는지 다방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또 한일간 만주국 인맥도 분석한다. 저자들은 박정희와 기시 두 사람을 작가 시바 료타로의 조어를 빌려 '제국주의의 귀태'라고 말한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의 공세에 대해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돼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 새누리당 등이 '정통성을 부정하는 폭언이고 망언'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책 내용을 보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책에서 '귀태'는) 사람을 직시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으로 상징되는 체제의 유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책 내용을 보면 별 오해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만주국에서 활동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에 관련해 기록된 사실관계를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논쟁으로 가지 말고 사실관계나 역사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의) 핵심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국정과 정국 운영에 있어 유사점을 얘기한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 반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책 표현을 갖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언급했다. 굳이 홍 원내대변인의 해명이 아니어도 사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호들갑에 가까운 반응은 국정원 이슈를 바꿔치기 하기 위해 NLL 논란을 제기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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